붉은 신시의 아침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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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996년 9월**일
나를 포함한 우리 세명의 정찰조원들은 강릉의 안인진리 앞바다를 내려다 보며 안내조의
복귀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피곤하다.. 이틀을 꼬박 세웠다.
벌써 남조선을 침투하여 혁혁한 성과를 올린것도 다섯번째이다.

이윽고 기다리는 신호의 번쩍임이 검은 밤바다로부터 전해온다.
하지만.. 일이 잘못되었다는 신호이다..!!

"윽??... 뭐야??..."
"조장동무.. 저 신호는..??..."

"다들 잠자코 있으라!!..."

어두컴컴한 밤바다를 향해 주시하고 있는 두눈..
이윽고 안내조로 보이는 무리들의 검은 형체가 보이는듯 하더니.. 10여명이 넘는 형체의
인원들의 행렬이 철책을 넘어 도로를 지나 이쪽으로 다급하게 향하는 것이다..!!

"뭔가.. 잘못된게 틀림없다.. 다들 실탄장전하라..!!..."
"알갔습네다..."

[차각!!... 철컥!!!..]

이윽고 어둠속.. 우리 침투조의 접선지 앞으로 잠수함의 조타수와 부함장,기관장과 승조원들
그리고 안내조원들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고 신속하게 접근해왔다.

"긴급상황이오..김중위!!..암초에 좌초되어 기관이 폭발하였소..지금..배를 버리고 탈출했소..."
"나머지 승무원들은 어케 됐습니까??.."

"모두 처리했시요.. 달리 방도가 없습네다.. 날이 밝기전에..
아니 지금 어서 여기를 떠야 합네다.."
"......!!....."

큰일이다.
나와 우리 정찰조라면 육로로 북으로 향하는건 식은죽 먹기인데.. 제대로된 실전경험이 없는
해상조원들,잠수함승무원들과 함께 이곳에서 험준한 산을 타고 북으로 이동이라니..

정찰조장인 나만 바라보는 어둠속.. 십수명의 눈빛..
빨리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기회일까??..."

왜 느닷없이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알수없는 설레임이 느껴졌을까??
평소.. 나 김희준이라는 인간의 정체성의 의구심이 점점 커져만 가는 요즘.. 당과 수령.. 장군
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도 지쳐서도 아니고..
남조선 인민들의 풍요로운 삶과 자유에 대한 동경때문도 아니다.

"조..조장 동무..!!...."

정찰조원 [창식]이가 나를 바라본다.
다른 22전대소속 해상조원 전투원들도 내 주변으로 모여들어 나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다들.. 사주경계하고 있으라...!! 박창식이하고.. 리철준이는 잠깐 나를 따라오라..!!.."

박창식.. 리철준..
나의 오른팔과 왼팔과도 같았던.. 나의 정찰조원들..
오래전 김정일군사대학부터 이놈들은 지금의 정찰국 소속으로 당과 수령을 위해
조국통일이라는 혁명과업을 이루어내기위해 지금까지 항상 나와 동거동락하며 때로는
그림자처럼 나를 지켰던 놈들이다.

접선장소에서 30여미터 떨어진 곳까지 걸어간후.. [창식]이와 [철준]이를 마주한다.

"어차피.. 몇시간후.. 아니 몇분후.. 남조선 아새끼들이 좌초된 잠수함을 발견할 것이다.."
"................"

"저들을 데리고 북으로 간다는건 있을 수 없다..저들 때문에 우리까지 죽거나 포로가 될것이다.."
".....조..조장동지.."

"저놈들을 여기서 다 자결시키고.. 우리셋만 북으로 향한다.."
"안됩니다..!!..."

".... 박창식이..??..."
"지금 총소리를 낼수도 없거니와.. 우리의 침투가 남조선에 발각된 이상..우리셋이 북으로
안전하게 간다는 보장도 없습네다..
나와 철준이형님은 여지껏 조장동지를 지켜왔습네다..끝까지 그 영광을 저희에게 주시기를
부탁드립네다..."

"무슨소리야??????....."
"저와 철준이형님이 저들을 데리고 북으로 향하겠습네다.. 조장동무는 남쪽으로 향하시라요.."

"..........박창식이...."
"그렇게 해주시기 바랍네다.. 조장동지...!!..잠잠해지면.. 그때 오시라요...."

"리철준이..... 이.. 자식들....!!...."
"시간이 없습네다.. 저 아색기들 데리고 우리가 북으로 향하는척 하면서 시간을 벌겠습네다..
그리고 자결시키도록 하겠습네다.."

"안돼!!... 너희 둘.. 내 피붙이와도 같은 놈들!!...."
"끝까지...조장동지를 지킬수 있는..그 영광된 임무를 완수하도록..기회를 주시기 바랍네다!!.."

[창식]이와 [철준]이의 이글거리는 눈빛..
그렇게 이들과 헤어지게 되었다.

왜.. 나는 그상황에서 심적으로 흔들렸을까??
"그래... 지금이 기회야....."

무장을 서둘러 해제하고.. 권총하나만 주머니에 넣은채.. 남으로 향하기 시작이다.

"저둘이라면.. 무사히 북으로 귀환할 수 있을 것이다.."
"제발.. 창식아.. 철준아.. 무사히 북으로 가거라..."

그렇게 한시간후.. 큰길가로 접어들어 정동진의 해안도로로 접어들었고 정동진의 인파에
섞이게 되었다.. 그리고 차량과 기차를 이용해서 그곳을 신속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내가 정찰조원들과 헤어진후 한시간이 지나자.. 남조선의 군인들의 차량들이 속속히 줄지어
헤드라이트의 두 눈으로 어둠을 밝히며 우리가 있었던 안인진리해안으로 이동되었고..
남조선의 이른바 대간첩소탕작전이 본격화 된듯 싶어보였다.

다음날..오전..
부산항옆의 부둣가에 영주에서 훔친차를 주차해놓았다.
차안에서 라디오를 켜놓으며 바닷바람을 맞고 있다.

남조선은 온통.. 이번 사건으로 난리가 난듯해 보인다.
과연 [창식]이와 [철준]이는 무사히 북으로 귀환할 수 있을런지..
어쩌면.. [창식]이 녀석이 생각이 맞을 지도 모른다.
저둘.... 아무리 정찰국의 용맹한 침투조원들었다 할지언정.. 남조선이 이렇게나 호들갑을
떨고 있는 상황에서.. 무사히 북으로 향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며칠간 졸음을 참으며 혁명과업을 수행해왔고 어제밤 한숨도 못자고 달려와서인지..
그만 차안에서 잠들고야 말았다.

오후..
뉘엿뉘엿 기우는 가을햇살이 감긴 두눈의 틈으로 비집어 들어왔다.
그만 깨어났다.

시간을 보니.. 벌써 오후다섯시가 넘어간다.
차량의 라디오소리..!!

11명의 공비의 자결....시체발견이라..
드디어 정찰조의 침투조와 안내조원들이 해상조원들을 자결시키고 북으로 향하는것 같았다.

하지만.. 조타수 [이광수]의 포로..
부함장의 전사..
나머지 전투원들의 전사소식이 며칠과 일주일 사이로 계속해서 들려온다...





1996년 11월 말

부산 영도의 작은 내항
하역장.......

갈매기떼를 몰고 들어오는 비교적 커다란 고깃배..

"자자... 오전 야리끼리니까네.. 후딱 치웠버리고.. 막걸리 한잔 하자.. 알았제??.."

[계동수]가 선주에게 받은 돈을 척척 세었던 돈뭉치...
그 돈뭉치를 뒷춤에 꽂아넣으며
얍실한 두눈으로...우리 하역군들에게 작업지시를 한다.

전형적인 자본주의의 저 얍실한 눈빛....
신성한 노동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의 그 추악하고 더러운 속내가 엿보인다.

나는 지금.. 북으로 귀환하려는 나의 당초계획을 전면 재수정하고 있다.
도대체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역겹고 비린내가 진동하는 더러운 자본주의 사회의 부둣가에서... 내 신성한 노동력을
착취당하면서도.. 생계를 연명해 나가며 도대체 무엇을 찾고자 이러는지...

내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었을 때 돌아가셨다는 아버지.. 아버지역시.. 남조선통일이라는
혁명과업을 수행하다 장열히 전사하였다고 들었다.
어린시절.. 아버지없는 자식이었지만.. 이런 아버지의 혁명운동의 덕택 때문이었는지..
당성검증이 엄격한 엘리트교육만 받으며 홀어머니와 자랐던 나..
유년시절..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김정일대학의 군관교육을 받게되었고 지금의 정찰국
전투원이 되었다.

하지만.. 그 때 그시절.. 아마 사춘기때부터 였나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내가 왜?? 라는 정체성에 강한 의구심을 가지며 살아왔다.

다른 정찰국출신의 아버지를 둔 또래의 동무들과는 다르게 마치..귀족처럼..당도 아닌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도움과 보호를 받으며.. 흰쌀밥에 고깃국을 배불리 먹고.. 좋은집에서..
좋은옷을 입고 그렇게 살아갔어야만 했다.

"어이.. 김씨... 김씨!!!...."
"... 네??....."

"뭐하노?? 빨리빨리 안나르고??.."
"네... 알았습네다.."

"김씨.. 그래가.. 연변에 돈 벌어갈수 있겠나???... 어이??..."
"...................."

"빨리빨리.. 날라치워라!!... 날씨추우니까네.. 퍼뜩 끝내고 고갈비에 막걸리나 한잔 하자!!.."
"...................."

아버지도.. 어머니도.. 어떤 친인척도 없는 북으로 더이상 돌아가지 않겠다..!!!
남의 연락원들도 이제는 만날 생각도 하지 않겠다.
이곳에서 이렇게 살것이다........


그날밤..
낡은 여인숙이 즐비한 나의 숙소안에 지친몸을 끌고 들어왔다.
복도에서 만난 립스틱이 진한 입술의 여인숙 여주인의 시선이 자꾸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오늘도 무사히.. 내 숙소로 들어왔다.
가장 안심이 되는 순간이다.
TV를 켰다..

공비2명이 추가로 사살되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끝까지.. 살아남길 바랬던.. [창식]이와 [철준]이 역시.... 그렇게 영광스럽게
맡은 임무를 충실히 다하다가.. 장렬히 전사하고야 말았다.

한달이상을.. 남조선의 수색병들을 따돌리며.. 험준한 산행만 고집하며 북으로 향했던 그들..
정말 그들은 나를 빼돌리기위해.. 작정을 한거 같아 보였다.

냉장고에서 남조선의 소주를 끄집어내어 마신다.
내 인생을 씹고.. 죽은 동료들의 기억을 씹고.. 나의 운명을 씹어 삼킨다.


[똑똑똑....]

한창 술을 마시고 있는데.. 누군가가 숙소의 문을 두드린다.
반사적으로 권총을 뒷춤에 꽂고 벽에 등을 붙혔다.

팔을 뻗어 잠긴 문을 열었다.
방문틈으로 빼꼼.. 여인숙 주인간내의 머리가 튀어나온다.

"호호.. 연벤총각.. 이불좀 빨아가지고 왔다카이..."
"네에.. 감사합네다.."

"아이고.. 연벤총각.. 니 혼자 술마시고 있었나?? 에효.. 안주도 없이.. 무신..."
"하하... 일없습네다.."

"쪼매만 기다리그래이..?? 내 김치라도 가져다 줄꼬마....."
"......가.. 감사합네다..."

여관주인 아주머니.. 긴장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연민이 느껴지는듯한
시선을 보낸다.

남조선 사람들..
그전부터 느꼈지만 이곳 사람들은 상호간에 어떤 경계심도 불신도 없는듯 하다.

자유?? 민주주의??...

미제국주의의 노예와 마찬가지인 삶이란게.. 이렇듯 인간살맛 나는 삶이라면..
차라리.. 그렇게 노예가 되어 살고 싶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숙소 주인아주머니가 가져다준 매콤한 김치..
그 김치를 먹으면서 술을 마시다보니.. 어느덧 2병을 비워버렸다.

그렇게 뒤로 팔배게를 하고 벌러덩 누워있었다.
잠시 눈을 부쳤다.
잠결에.. 복도의 미세한 발자욱소리에 두눈이 순간 뜨였다.

반사적으로 몸을 굴려 권총을 잡고 문옆에 귀를 기울인다.

남자 둘..셋이 신속히 움직이는 발자욱..!!

"이.....미제 반동 개간내!!......"

순간 내가 무사안일하게 긴장을 놓고 있다가 미제 제국주의의 속성에 속았다는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옷가방은 팽개쳐두고 중요한 물품만 챙겨 신속히 창문을 열고 밖으로 달아났다.

건물그림자에 최대한 몸을 숨겨 골목길을 빠져나온다.
수많은 경찰들이 나의 숙소쪽을 포위하는게 보인다.
하지만 나는 이미 간만의 차로 이들의 포위망을 빠져나온것이다..!!..

"10초만 늦었더라도.... 휴우...."


3일후..

천안..
며칠째 마땅한 일거리를 찾고 있다.
새로 장만한 묵직한 옷가방을 챙겨들고 어둠속을 걷고 있다..
며칠만인지.. 자본주의의 쇠주에 취해서 한발..한발.. 흐느적 거리며 오늘 하루를 때울만한 잠자리를 찾고 있다.

어둠속.... 남녀의 싸움소리가 들린다.
그옆을 지나쳐 간다.

"악!!!!!.........이 개새꺄!!..."
"이런... 이 씨벌년이!!!!......"
[짝!!!!!!!!!!!!!!]

"이런!!... 이 좃같은년을 봤나...!!.."
[퍽!!!!......빡!!!!!!....]

다짜고짜 힘없는 남조선의 간나를 패버리는 사내놈..
갑자기 발걸음이 무거워만 진다.

뒤를 돌아본다.

불꺼진 간판아래.. 왠 여인네를 다짜고짜 발로 밟는 남조선 아새끼...
옷가방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사내놈의 어깨에 손을 [턱!!] 올려놓았다.

"씨바... 뭐여????......"
"그만두라... 여자 아닌가??..."

"하하...씨바... 이런 개이 썅녀르쉐끼를 봤나.. 이씨!!!!!!!!!!...."

순간녀석이 주먹을 힘차게 뻗었다.
반사적으로 사내놈의 주먹을 잡아채어 빙글 돌려버렸다.

사내놈의 오른팔이 뒤로꺾이며 나에게 꼼짝도 못한채 제압당해버렸다.

"아!!..아!!... 이거.. 놔.. 이 개이 씨벌새꺄!!....아!!!...."

"훗... 살려달라고 하라.. 그럼 살려준다.."
"이런..이!!... 아!!!...아!!!.... 좋은말 할때..놔라!!..아!!....."

".................."
[툭....툭!!!.....]
"아!!!......아!!!!.......아아!!!!!!!!!!!!!!!.......악!!!!!!!!!!!!!..."

[빠직!!!!!!!!!!!!.......]
"끄아악!!!!!!!!!!!!!!!!!!!!!!!!!!!!!!!!!!!!!.........."

사내놈의 팔꿈치 관절이 뒤로 탈골되어 흐느적 거리며 나자빠진다.
"훗....... 놨다.."
"끄아악!!!!!!!!!!!!!!..........."

사내놈이 한팔을 흐느적거리며 바닥에서 뒹굴어 댄다.

하얗게 질린 기집...
어둠속 웅크리고 앉아 나를 바라보며 벌벌 떨고 있다.
오무린 두다리의 가랭이 사이로.. 오줌이 질질 흘러나오고 있다.

옷가방을 들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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